바람이 없어도 흩어지고, 손이 없어도 사람을 붙잡는 향기가 있다. 오래된 기억의 주름 사이에 숨어 있는 한 줄기 은은한 향기, 어린 시절 이른 새벽 아버지께서 우려 주시던 차 한 잔의 향기이다. 아, 그리운 타이응우옌의 차 향기. 자몽꽃 향처럼 짙지도 않고, 빈랑꽃 향처럼 그윽하지도 않다. 청춘 시절의 숨은 향기처럼 은은하지만, 한 사람의 평생을 따라다닐 만큼 깊게 스며든다.

민럽 (Minh Lap)면 짜이까이 (Trai Cai) 차밭의 한 풍경
이번에 다시 찾은 타이응우옌에서 따 반 록 성 정보센터장이 직접 우리 일행을 명차 산지의 차밭으로 안내하였다. 비를 머금은 언덕 위에서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찻순들이 짙푸른 빛을 띠며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차밭에 자라고 있는 찻순이 훗날 어떤 차가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어린 새순 하나만 따면 딘차가 되고, 막 잎을 펼친 새순과 잎 한 장을 함께 따면 똠논차가 되며, 잎을 하나 더 따면 목꺼우차가 된다. 아, 바로 이것이었구나. “목꺼우차는 오래 두어야 펴진다”, “타이응우옌의 차, 뚜옌의 미인”이라는 유명한 속담의 의미가.
나는 같은 어린 찻잎을 두고 ‘쩨’와 ‘짜’라는 두 단어를 다르게 사용하였다. 짜이까이 명차의 중심지인 민럽면 당위원회 부서기 응우옌 민 호안의 설명에 따르면, 언덕 위에서 푸르게 자라고 있을 때는 ‘쩨’이고, 가공 과정을 거쳐 마시는 음료가 되면 ‘짜’가 된다고 한다. 또한 현재 민럽면에는 362ha의 차밭이 있으며, 그중 100ha 이상이 VietGAP 기준을 충족하고 있고, 타이응우옌성 최초의 신농촌 표준 달성 지역이라고 소개하였다.

민럽(Minh Lap)면 주민들이 찻잎을 수확하고 있다
타이응우옌이 ‘제일의 명차’라는 찬사를 받아온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그런데 이 ‘명차의 왕국’ 안에도 마치 민화의 사폭 병풍 속 네 명의 선녀처럼 각각 순수하면서도 향기로운 네 개의 명차 산지가 있다. 바로 떤끄엉 차, 라방 차, 짜이까이 차, 케꼭 차이다. 옛 속담에 “네 명의 딸을 두면 가난하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 마치 하늘의 뜻처럼 이 땅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2024년 기준 타이응우옌성의 차 재배 면적은 2만 2,200ha에 달했으며, 생엽 생산량은 27만 2,800톤, 가공차 생산량은 5만 4,600톤에 이르렀다. 이를 통해 창출된 차 산업의 가치는 13조 8천억 동을 넘어섰다.
이 같은 낙관적인 수치는 누구나 인터넷에서 ‘Thainguyen’을 검색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차 수확 농민들조차 스스로 첨단 작업복을 갖추고 있다. 내가 짜이까이 차밭에서 본 것은 자동 냉각 팬이 장착된 작업용 점퍼였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완벽한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공정이 있다. 바로 찻잎을 따는 일, 비비는 일, 그리고 차를 우리는 일이다.
“첫째는 물, 둘째는 차, 셋째는 우림 기술, 넷째는 다관.” 좋은 차 자리를 완성하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을 말하는 익숙한 속담이다. 옥엽귀궁, 고산장수와 같은 다도 절차가 타인하이, 띠엔옌, 흐엉번, 하오닷 등 이름난 차 장인들의 우아한 손끝을 거치며 자사호 속에 잠들어 있던 차 향기를 깨워낸다. 산비가 내린 서늘한 날, 공간을 가득 채우는 그 향기는 실로 매혹적이다. 문득 응우옌 뚜언이 「새벽 안개 속의 차 한 잔」과 「흙으로 만든 다관」을 집필하던 시절에도 오늘 이 오후만큼 깊고 아련한 차 향기를 경험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떤끄엉 차는 이미 가장 유명한 명차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띠엔옌 다원 홍타이2 마을에서 재배되는 이 차는 풋쌀 향기와 은은한 떫은맛, 깊은 단맛이 조화를 이루는데, 지난해 차 예술가 호앙 아인 즈엉이 다낭 반꺼 산 정상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 부부에게 소개한 바로 그 차이기도 하다.
반면 짜이까이 차는 이곳의 전문 감별사들이 흔히 ‘짜까이’라고 줄여 부르는데, 은은한 풋쌀 향과 꿀처럼 황금빛을 띠는 찻물, 적당한 떫은맛, 그리고 목 깊숙이 오래 남는 달콤한 여운을 지니고 있다. 그 맛과 향은 떤끄엉 차와 매우 흡사하여, 마치 《끼에우전》의 투이번과 투이끼에우 자매처럼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지녔다. 두 차를 구별하는 일은 현지의 차 애호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라방(La Bang) 차협동조합의 차 제품(라방면)
또 하나 최근 새롭게 명성을 얻고 있는 차가 바로 라방 차이다.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응우옌 티 하이 라방 차협동조합 이사장은 고향의 특산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들려주었다. 여러 명차 산지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중두종 차의 향과 맛을 이야기한다면 어느 곳도 떤끄엉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밧띠엔 품종 차는 비록 찻물이 약간 붉지만 꿘쭈를 능가할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라방에서 재배하는 롱번차는 네 글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푸르고, 진하며, 빛나고, 황금빛을 띱니다. 여기에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산림의 은은한 향기까지 담겨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1986년, 제초제로 뜨거워진 밭에서 맨발로 차를 따며 하루 한 끼 제대로 먹기도 어려웠던 한 소녀가 오늘날 차 명인이자 유럽, 일본, 중국, 미국까지 시장을 넓힌 청정차 기업의 대표가 되기까지는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와 놀라운 의지가 있었다. 현재 그녀가 운영하는 협동조합의 원료 차밭은 37ha 규모이며, 이 가운데 20ha는 VietGAP 인증을, 17ha는 유기농 인증을 받았고, 7ha는 생산 이력 추적 QR코드를 갖추고 있다.
소박하고 진솔한 목소리로 여성 다예가는 우리에게 차 제조 과정을 들려주었다. 찻잎은 반드시 이른 새벽에 수확해야 하는데, 특히 안개가 오래 걷히지 않는 날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때의 찻순은 이슬을 머금고 있어 귀중한 유효 성분을 많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찻잎은 시들리기와 살청 과정을 거치고, 다섯 차례 덖음과 수분 조절을 반복한다. 여섯 번째 단계에 이르러 찻순이 완전히 무르익으면 한데 모아 향을 응축시켜 비로소 차가 된다. 차향은 도자기 주전자에서 피어올라 찻잔 바닥에 머물고, 사람의 목소리 속으로 스며든다. 그 향은 곧 인생의 향기이기도 하다. 숱한 고난을 지나며 쓴맛을 겪었지만 끝내 달콤하고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는 삶의 향기 말이다.

라방(La Bang) 차협동조합 대표 응우옌 티 하이(Nguyen Thi Hai)
남을 보며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문득 생존을 위한 전쟁 속에서 마셨던 또 다른 차의 쓴맛들을 떠올렸다. 캄보디아 전선에 파병되었던 그 시절, 나는 일 년 내내 ‘미차(米茶)’라 불리던 볶은 쌀을 우린 물과 함께했다. 건기에는 적을 추격하며 목이 타들어 가는 갈증에 시달렸고, 부대는 여러 차례 폴 포트 학살 희생자들의 유골이 잠겨 있던 물, 이른바 ‘백골차(白骨茶)’를 마시기도 했다. 숲속의 낙엽이 썩어 물빛이 검게 변하고, 짐승조차 물을 마시러 오지 않는 웅덩이의 물은 ‘엽독차(葉毒茶)’라 불릴 만했지만, 그마저도 걸러서 마셔야 했다.
은은한 차향이 다시 내 생각을 현실로 이끌어 왔다. 라방의 ‘딘땀차(Đinh Tâm Trà)’는 2017년 다낭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기간에 각국 정상과 해외 귀빈들에게 증정될 선물로 선정되었다. 2006년 협동조합 설립 당시 수백만 동에 불과했던 자본금은 2024년 연매출 40억 동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향도 있고, 맛도 있고, 명성도 있고, 경제적 성과도 얻었지만, 응우옌 티 하이(Nguyen Thi Hai) 대표는 여전히 한 가지 염원을 품고 있다. 그것은 고향의 특산품인 타이응우옌 차의 뿌리를 찾는 일이다. 마치 문화적 정체성과 정신적 버팀목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2024년 그녀는 기업인, 협동조합 관계자, 기자들로 구성된 탐방단을 이끌고 봉산(Nui Bong)의 고차수림을 찾았다. 해발 740m 지점에는 둘레가 무려 1.6m에 이르는 노차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봉산의 고차수를 유산수로 지정하기 위한 자료를 준비하던 중, 효심 깊은 딸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또 다른 기쁨이 찾아왔다. 라방의 산사람들이 땀다오(Tam Dao) 산속에서 큰 나무 그늘 아래 쉬다가 떨어지는 꽃을 보고서야 그것이 귀한 차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응우옌티하이는 즉시 조사단을 꾸려 현장으로 향했다. 아홉 시간 동안 산을 오르고 계곡을 건넌 끝에 해발 1,300m 지점에서 마침내 고차수를 발견했다. “고차수를 보는 순간 온몸이 환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녀는 당시의 감동을 이렇게 회상했다. “세상에! 라방에도 고차수가 있었어요. 라방 역시 타이응우옌 명차의 발상지였던 거예요.”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기뻐하고 웃었다. 행복도 차향과 같아서 언제나 나누고 퍼뜨릴 때 더욱 깊어지는 법이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고, 소박하고 겸손한 자사호를 바라보았다. 그 작은 다관 안에는 수많은 문화의 층위가 담겨 있었다. 대지는 차나무를 길러냈고, 다시 차의 향과 맛을 떠받치며 끝없는 헌신을 보여 주었다. 이것이 바로 오행 가운데 토(土)의 정신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 땀다오 산맥 동쪽 비탈에서 흘러내리는 껨(Kem) 계곡의 맑은 물은 곧 수(水)다. 그것은 숯불의 화(火)와 만나 끓어오르며 차의 천연 향기를 깨운다. 목(木)의 기운을 품은 찻잎은 물과 흙 속에서 조용히 피어나 한 사람의 삶과도 같은 향기를 빚어낸다.
그렇다면 금(金)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이 자리에서 그녀와 함께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우리 참전용사들이다. 금은 한 시대를 살아내며 나라와 국민을 위해 싸웠던 병사들의 상징이다. 사람은 빠르게 살아갈 수는 있어도 차를 서둘러 음미할 수는 없다. 차는 깨어날 시간이 필요하고, 사람 또한 느끼고 음미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순간 차의 향과 맛은 삶 속의 쉼표가 된다. 마치 역동적인 인생이라는 교향곡 사이에 놓인 섬세한 휴지부처럼 말이다.